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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 통장을 보면 원리금이 빠져나가고 나서야 "이자가 이렇게 많았나"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저도 2022년 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그 감각을 배웠습니다. 프랑스는 지금 그리스보다 국채 금리가 높고, 일본은 버블이 꺼진 뒤 30년을 잃었습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85%에 달합니다. 저금리가 만든 착시는 반드시 청구서로 돌아온다는 것, 이 세 나라의 궤적이 너무 닮아 있어서 지금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금리 착시가 만든 프랑스의 빚 청구서
혹시 "그리스보다 프랑스 국채 금리가 더 높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저도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숫자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2022년까지만 해도 그리스 국채 금리는 프랑스보다 2.1%포인트 높았습니다. 그런데 2025년 8월 기준으로 그리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4.3%인 반면, 프랑스는 4.79%까지 치솟았습니다. 독일이 3.4%라는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는 유로존 내에서도 신용 위험이 큰 나라로 분류되기 시작한 셈입니다.
이 역전 현상의 뿌리는 마이너스 금리(Negative Interest Rate)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기서 마이너스 금리란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맡길 때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수료를 떼어가는 비정상적인 금리 체계를 말합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예금 금리를 -0.5%까지 낮추자,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0.05% 금리의 프랑스 국채조차 차라리 나은 선택이 됐습니다. 실제로 2021년 프랑스의 국채 발행 평균 금리는 -0.05%였고, 프랑스 정부는 돈을 빌릴수록 이자 수입이 생기는 기묘한 구조 속에 놓였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직후 620억 유로 규모의 감세를 단행하면서 재정 지출은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연간 1,519억 유로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쌓였고, 금리가 정상화되자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국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의 고리(Debt Spiral)에 빠졌습니다. 쉽게 말해, 빚으로 빚을 갚는 구조입니다. 2020년 297억 유로였던 이자 비용은 2026년 912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IMF 프랑스 재정 데이터).
- 2021년 프랑스 국채 발행 평균 금리: -0.05%
- 2025년 8월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 4.79% (그리스 4.3% 초과)
- 연간 재정적자 규모: GDP 대비 약 5.8~6%
- 2026년 예상 이자 비용: 912억 유로
버블을 만든 영웅, 버블을 끈 역적 — 일본의 반복
버블(Bubble)을 만든 사람이 칭송받고, 버블을 끄려 한 사람이 욕을 먹는 일이 역사에서 반복된다는 것을 일본의 사례에서 제일 선명하게 확인했습니다. 버블이란 자산 가격이 실제 가치와 동떨어져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를 가리킵니다. 1987~1988년 일본 대장상(경제 총괄 장관)이었던 미아자와 기치는 당시 일본은행에 명령권을 행사해 금리를 억지로 낮춰 2.5% 수준을 27개월 동안 유지했습니다. 그 결과, 도쿄도 23구 땅을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동산과 주식이 폭등했습니다.
문제는 이후입니다. 1989년 일본은행 총재 미에노 야스이가 과열된 시장을 식히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 니케이 지수는 1990년 한 해에만 38.7% 폭락했습니다. 이후 최저점까지 80% 이상 무너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에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991년 총리가 된 사람은 미에노가 아니라 미아자와였습니다. 버블이 사라지자 일본 국민들이 "그 시절 호황을 이끌던 사람이 필요하다"는 착각에 빠진 결과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님티(NIMTY, Not In My Term)' 현상입니다. 여기서 님티란 내 임기 안에만 좋아 보이면 된다는 식으로, 경제의 부작용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정치적 선택을 가리킵니다. 버블을 만드는 동안은 지지율이 오르고, 버블을 끄려 하면 민심이 등을 돌립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이 유혹에서 자유로운 지도자는 드뭅니다. 제가 투자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잘못된 정책의 결과가 책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요.
한국 가계부채 85%, 금리 인상의 청구서가 도착했습니다
한국이 프랑스나 일본과 다른 점은 빚의 주체입니다. 프랑스는 국가가, 일본은 기업과 개인이 부동산과 주식에 빚을 쌓았고, 한국은 가계가 주로 부동산에 빚을 집중시켰습니다. 국토연구원(출처: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아파트 가격 변동의 60.7%가 기준금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기준금리란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줄 때 적용하는 기준이 되는 금리로, 이 숫자 하나가 대출 금리와 부동산 시장 전체를 좌우합니다.
0%대 금리가 유지됐던 2020~2021년, 가계신용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아파트 가격은 85주 연속 상승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시기를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금리를 보고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이 기세가 끊기지 않을 것 같다"는 군중심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습 효과가 2025년에 또다시 88주 연속 상승이라는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금리가 현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2020년 8월 2.39%였던 가계대출 금리는 4.66%까지 올랐습니다. 3억 원을 20년 만기로 빌렸을 때 월 원리금은 157만 원에서 192만 원으로 불어납니다. 한 달에 35만 원이 추가로 빠져나간다는 뜻입니다. 이 부담이 쌓이자 실제로 2026년 7월 소매판매는 2.6%, 8월은 1.8% 감소했습니다. 반도체 수출이 역대급이라는 뉴스가 나오는 와중에 내수가 얼어붙고 있다는 현실은, 빚 중독의 청구서가 이미 도착했다는 신호입니다.
대출은 쓰되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 제가 지켜 온 원칙
공포에 질려 무조건 대출을 피하는 것도, 분위기에 휩쓸려 한도까지 당기는 것도 모두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투자를 시작할 때부터 스스로에게 물어본 기준은 하나였습니다. "금리가 지금보다 2%포인트 올라도 이 대출을 버틸 수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많은 결정을 단순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실제로 저는 마이너스통장을 투자 자금으로 활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반드시 먼저 만든 것이 상환 계획이었습니다. 어떤 자산을 언제 팔아서 갚을지 구체적인 경로를 정해 두지 않으면, 그건 레버리지(Leverage)가 아니라 그냥 빚입니다. 여기서 레버리지란 자기 자본을 적게 쓰고 외부 자금을 빌려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계획 없이 빌리면 이 레버리지가 언제든지 독으로 뒤집힙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빌리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갚는 경로가 없는 채로 빌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거주 집을 알아볼 때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월 원리금이 월 순저축액의 3분의 2를 넘지 않는 선에서 대출 규모를 정했습니다. 당시에는 조금 아쉬웠지만, 지금 금리 환경에서는 그 선택이 맞았다고 확신합니다. 국가의 빚 중독은 개인이 막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 가계의 빚 중독은 지금 당장 내가 막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도, 일본도, 위기는 항상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판단에서 시작됐습니다.
- 대출 실행 전, "금리 2%포인트 상승 시 버틸 수 있는가" 자문
- 구체적인 상환 경로 없는 대출은 레버리지가 아닌 빚
- 월 원리금이 월 순저축액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규모 결정
- 전세·월세도 금리 인상 시 부담이 커진다는 점을 함께 고려
자주 묻는 질문
Q. 한국도 프랑스처럼 국가 부도 위기가 올 수 있나요?
A. 프랑스와 한국의 구조는 다릅니다. 한국의 정부 부채는 GDP 대비 약 45% 수준으로, 116%에 달하는 프랑스보다 훨씬 낮습니다. 다만 가계부채 비율이 GDP 대비 85%로 높다는 점은 분명한 취약 요인입니다. 국가 부도보다는 내수 침체와 소비 위축이 더 현실적인 위험으로 보입니다.
Q. 지금 집을 사는 게 맞는 건가요, 기다리는 게 맞는 건가요?
A. 금리를 예측해서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전문가도 어렵습니다. 제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타이밍이 아니라 감당 가능성이었습니다. 지금 금리 수준에서 월 원리금이 월 순저축액의 3분의 2 이하인지 먼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공포에 질려 무조건 기다리는 것도, 분위기에 휩쓸려 한도 대출을 받는 것도 모두 위험합니다.
Q. 마이너스 금리가 왜 부동산 버블을 만드나요?
A. 마이너스 금리 환경에서는 은행에 돈을 맡기면 오히려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금이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실물 자산으로 쏠립니다. 유럽과 한국 모두 저금리 시기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돈의 가치가 싸질수록 실물 자산의 가격은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Q. 님티(NIMTY) 현상은 왜 계속 반복되나요?
A. 저금리로 경기를 부양하면 그 효과는 임기 안에 즉시 나타나고, 부작용은 임기 이후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미아자와 기치처럼, 버블을 만든 사람은 칭송을 받고 버블을 끄려 한 사람은 욕을 먹는 구조입니다. 이 패턴은 정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어느 나라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
프랑스는 마이너스 금리라는 착시 속에서 국가가 빚 중독에 빠졌고, 일본은 억지 저금리로 만든 버블이 30년 불황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은 가계가 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금리가 낮을 때 빌리는 건 괜찮다"는 착각이 쌓여서 결국 금리가 오르는 순간 한꺼번에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켜보면서 배운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국가 정책을 바꾸는 것은 개인의 능력 밖이지만, 내 가계의 부채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습니다. 상환 계획이 있는 대출과 없는 대출은 완전히 다른 물건입니다. 지금 한국은 금리와 물가 지표를 유독 꼼꼼히 봐야 할 시기입니다. 코어위브(CoreWeave) 창업자들의 대규모 지분 매도, 회사채 금리의 급등 같은 신호들은 금융시장이 이미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공포가 아니라 준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